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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한국의 영토 3주차 -

이게될까 2024. 9. 3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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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시 - 독도 

독도의 여러 이름

1. 일본의 모순된 논리

1905 -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독도를 시마네현의 오키섬으로 편입. 한국을 을사늑약으로 제압

1906.3 - 독도를 일본에 편입했다고 한국에 알림

1905 시점의 일본 - 일본은 독도에 대한 무주지 선점 논리를 적용
오늘날의 일본 -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 
모순! => 일본의 도곧에 대한 역사적 주장이 크게 잘못되어 있다는 점을 배움

 

2. 독도 명칭의 변천

독도 학습의 기초
독도의 명칭이 한국, 일본 양쪽에서 변천이 있었음
독도 명칭의 변천을 배우는 것이 독도 학습의 기초이다.

한국
19세기 중반까지 - 우산도
그 이후 - 돌섬, 석도, 독도
1904 문헌 - 독도

일본
19세기 중반 - 송도 (마쓰시마)
이후 한 때 - 랸코도
1905 - 죽도(다케시마)

 

3. 일본의 독도 영유 논리

Q 일본은 왜 독도를 일본 영토로 주장하는가?

A 일본이 노리는 것은 독도가 아닌 독도 주변의 어장과 해저 자원. 유엔에서 배타적 경제 수역 200 해리가 국제 협약이 된 이후 일본은 독도가 일본 영토가 되면 독도로부터 200해리까지 일본의 배타적 경제 수역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독도 영유권 주장

A 현재 일본은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3가지로 요약해 세계에 홍보

1. 일본은 17세기 중반에 독도에 대한 영유권 확립
2. 일본은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 오키섬으로 정식 편입

그 이전에 한국이 독도를 영유했다는 증거는 모두 애매함

3.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독도는 한국 영토에서 제외, 1951.7 한국은 한국 영토 조항에 독도를 기재해 달라고 요구 BUT 미국이 이 요구를 거절(러스크 서한)함 -> 독도는 일본 영토로 남았따.

 

4. 일본의 독도 고유 영토론은 성립되지 않는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4대 주장 중 두 번째 부분에 대해선 이전에 이미 언급

첫 번째 주장에 대해 반박하자

 

한국 문헌에 나오는 독도

1. 삼국 사기에 언급된 우산국

신라 본기 512년조 요약
- 512년 우산국이 귀속해왔다. 우산국은 강원도 동쪽 해상에 있는 섬이고 울릉도라고 한다. 이사부는 계략을 세워 우산국 사람을 굴복시켰다.

우산국이 울릉도라고 기재되어있고 독도의 이야기는 없다!
BUT 한국에서 우산국 = 울릉도 + 독도라고 세종실록 지리지에 실려있따.

세종 실록 지리지 1454
우산과 무릉 두 섬이 현 정동 바다 한 가운데에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니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 우산국 or 울릉도라고 했다.

여기서 보아 우산국 = 우산도 + 무릉도(현 울릉도)이다.
울릉도에서 날씨가 맑을 때만 보이는 섬은 독도 뿐이다.

 

 

2차시 - 독도 

독도 인식의 혼동

1. 울릉도 무인도 정책과 독도

1403 - 태종이 울릉도를 무인도로 할 것을 명령. 군역을 피해 울릉도로 도망가는 사람을 막기 위함

1435 - 울릉도에 사는 모든 도민을 육지로 이동, 5년마다 울릉도 수색하여 그 때 얻은 울릉도, 독도에 대한 지견이 세종 실록 지리지에 기재

 

2. 울릉도 관리 파견 중단과 신증 동국 여지 승람

1511 - 울릉도는 무인도로 잘 관리 되어 있었지만 조선 내 국정 변화로 1511년 관리 파견 중단. 이 후 독도에 관한 지식 혼동 일어남

1530 - 대표적인 예가 신증 동국 여지 승람 1530

신증동국여지승람 45권 - 울진현 우산도 울릉도조
무릉이라고 하고, 우릉이라고 한다. 우산과 울릉은 원래 한 섬으로서 지방은 100리다.

독도를 울릉도 서쪽에 그리는 오류도 범하였다.

일본 측도 16세기까지의 일본 지도는 문제가 많았다.
대 일본 정통도 - 16세기 중반 작성
일본 북쪽과 남쪽에 없는 땅을 그리기도 했고, 울릉도 독도는 기재되지도 않았다.

 

3.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최대 문제점

일설에 우산과 울릉은 원래 한 섬
일설(주기)이지만 독도와(우산도)와 울릉도를 한 섬이라고 기재한 부분이 문제
일본 측이 가장 강하게 비판한다
=> 이 부분에 대해서는 후에 조선이 공문서를 통해 정확히 정정

 

독도 인식의 재정립

1. 신경준에 의한 정정 작업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지리학을 대성시킨 신경준 (1712 ~ 1781)
강계고, 강계지 제5권(1756)에서 조선의 울릉도, 독도 인식을 바로잡았다.

우산과 울릉은 하나의 섬이라고 여지지에 나와있지만 여러 도지를 생각하면 두 섬이라고 작성해놨다.

'일설에 의하면 우산과 울릉은 원래 한 섬'
-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을 인용한 구절

문장이 다시 정리되어 동국문헌비고 등에 기재되었다.

여지지가 말하기를 울릉, 우산 모두 우산국의 땅이다. 우산은 즉 왜가 말하는 송도(독도)다.

우산도가 일본이 말하는 송도(독도)이며 조선의 영토임을 확실히 선언하였다.

일본은 신경준이 날조한 것이라고 말했으나 그렇게 구분 지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
- 한문으로 작성된 원문에는 쉼표나 마침표같은 것이 없이문장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4. 조선, 독도 인식을 다시 확립시킴

1454 세종 실록 지리지 - 조선은 독도(우산국)에 대해 인식을 확립

1530 신증동국여지승람 - 울릉도 수색의 중단으로 독도 인식이 약간 애매해짐

1756 강계고, 1770 동국문헌 비고 - 우산국 = 왜가 말하는 송도(독도) 즉 조선 영토라는 인식이 재정립

 

3차시 - 일본에서의 독도

일본의 초기 독도 인식

1. 일본 신화와 독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 - 고사기 712년 완성

일본의 신들이 일본 열도를 만든 이야기로 홋카이도, 오키나와, 독도를 만드는 이야기가 아니다.
- 이들은 모두 원래 일본의 고유 영토가 아닌 땅들이다.
- 일본의 시조들이 일본 고유 영토에서 도곧를 제외시킨 것이다

->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가 아니다!

 

2, 일본 최초의 지도 교키도

최초의 일본 전도
- 8세기 일본 스님인 교키가 일본 전국을 걸어다니고 교키도라고 불리는 최초의 일본 전도 완성

교키도에는 독도가 없고, 일본 북서쪽 경계는 오키섬이다!

 

3. 일본, 울릉도를 고려의 섬으로 인식

일본은 11세기에 울릉도를 '우릉도' 혹은 '우르마 섬'으로 부르고 고려의 섬으로 알고 있었다.

대 일본사 - 에도시대 (1603 ~ 1867) 막부의 친척이었던 마토번에서 편찬한 역사서로 일본 역사의 준 공식 기록이다.

 

4. 일본 지도와 문헌, 오키섬까지를 일본 영토로 기록

관찬 게이초 일본도 (1610)
1603년 집권한 사무라이 정권 에도막부는 교키도를 대신 할 보다 정교한 일본 지도를 작성

첫 번째 지도 - 관찬 게이초 일본도
게이초 = 일본의 연호
게이초 시대 - 1596 ~ 1615

독도가 없고, 일본 북서쪽 한계는 오키섬이며 북해도와 오키나와도 없다.

관찬 쇼호 일본도 (1648)

일본의 에도막부가 쇼호 시대(1645 ~ 1648)인 1648년 만든 공식 지도 
- 여기서도 일본 북서쪽 한계는 오키섬이다.

은주시청합기 (1667)
- 시마네현의 일부인 이즈모국의 관리 사이토 호센이 작성한 공문서이다.
- 처음으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 여기서도 일본의 북서쪽 경계가 오키섬이라고 기재,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님을 확인

일본은 8세기부터 지도와 문헌에서 오키섬까지의 자국 영토로 인정했고 17세기가 되어 조선과 일본은 울릉도 분쟁을 일으켜 독도의 영유권 문제가 거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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