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동 서양 고전 문학 강독 - 강의 요약문 2 열하일기, 천변풍경

이게될까 2024. 4. 14. 04:04
728x90
728x90

 

열하일기
9주차 조선시대의 사행록이란, 박지원의 삶과 문학, 열하일기가 지어진 조선시대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가면 된다. 서양전에서 2작품, 동양에서 2작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을 꿰뚫는 근본적인 가치가 있다. 낡거나 진부한 이야기로 느낄 수 있으나 그 속의 가치와 의미는 낡거나 진부한 것이 아닌 시대와 국경을 넘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고전을 무겁거나 비장하고 슬프게 여길 수 있지만, 고전은 가볍고 재밌을 수 있고, 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주기 때문에 고전을 읽는다. 다시 읽을 때 마다 항상 다른 곳에 집중하면서 읽게 되니까 항상 나에게 주는 의미가 다르게 된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과 같다. 한국이 다른 나라와 고전과 다른 점은 역사 즉 정사에서 기록하지 않은 서민들의 삶이 사실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열하일기에서도 사투리가 들어가 있다. 익숙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을 되찾는 충격을 가질 수 있고 각색하고 창조해갈 수 있다. 열하일기는 최고의 여행기라고 불리는데 책을 읽어보면서 생각해보고 확인하면 좋다. 열하일기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정조 때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를 갔다 온 여행 일기이다. 열하일기는 흔히 사행록 즉 사신행차를 기록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아무나 국경을 넘을 수 없었고, 왕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나갈 수 있었다. 즉 사행이 해외를 나갈 유일한 기회였다. 사신단의 이름은 연경단이었다. 오랑캐의 수도로 낮춰 부른 것이다. 조선이 청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알 수 있는 이름이다. 빅지원은 연행록이라 하지 않고 열하일기라고 한 이야기는 연암의 일행이 열하까지 간 것은 처음이므로 열하를 강조하기 위해 이름을 지었다. 지적 부흥을 이끈 그룹은 노론 개통의 양명학을 지양한 연암그룹, 선배 왕의 책을 정리해 놓은 규장각을 지은 정조, 천주교의 영향을 받은 다산학파가 이끌었다. 다산과 연암은 성향, 취향이 달랐다. 박지원은 조선후기 실학자로 흔히 알려져 있다. 1737년 서울 서소문 밖 야동에서 출생하였다. 양기가 충만한 지식인이기 때문에 연암이 이야기하는 소리만 들어도 귀신이 달아난다고 하였다. 대대 손손 청렴을 중시해 가난의 연속이었는데 처가에서 16살부터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최고의 명문가가 되었다. 당쟁은 사실 조선시대 내내 있었고, 자신의 논리로 해쳐 나가야 할 일이다. 아버지나 장인이 출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박지원이 출사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과거에 메달리기보단 큰 뜻을 품은 것이다.
10주차  연암이 생각하는 친구란 나의 인생이 큰 도움이 되는 사람,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 삶의 가장 큰 가치이다. 사람을 사람 답게 만드는 핵심적인 가치이다. 연암에게 우정이란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사람은 혼자서 아무것도 창조해 낼 수 없고,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낼 수 있다. 나의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것은 남에 의한 것이다. 연암은 남들과 소통하며 나만의 사유를 만들어 나가고, 확장해가면서 나만의 글을 적고 삶의 철학을 만들어낸다. 신분, 나이, 국경을 모두 초월한 우정을 만들어 나갔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남들을 만나 우정을 만들고 새로운 글쓰기를 통해 삶을 살아갔다. 지적 교류 장소인 백탑에서 당파, 신분을 초월하여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지적 교류를 만들어 북학파와 청나라에서 유행했던 글, 문학들인 소품문을 만들어 낸다. 연암의 절친인 홍대용에게 보낸 편지 중에 누구라도 나에게 좋은 말을 해 준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보다 열살이나 어린 젊은이에게 반갑게 맞이해주고 직접 밥을 해주는 것에서 연암의 사람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고, 인간성을 깊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연암의 인품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백탑에서 시, , , 화는 물론이고 천문지리까지 대화한 지성의 대화에서 나온 것이 북학이다. 임진왜란 때 도와준 명나라의 은혜를 갚고 여진족이 만든 야만의 나라인 청나라를 물리치자라는 사대부들이 실제로는 그대로 행동하지 않고, 말뿐인 이데올로기였다. 말뿐인 이데올로기 보다는 청나라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홍국영이 실세로 등극하자 정계에 진출하지도 않은 연암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여론을 주도했던 연암은 연암협으로 피신하여 살며, 친구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게 된다. 홍국영이 쫓겨나자 연암은 간신히 서울로 돌아오지만 백탑파는 해체되어 있었고, 다시 우울증이 돌아온다. 팔촌 형님이 축하 사절로 중국에 가게 되자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연암은 중국에 가게 된다. 연륜과 경험이 쌓인 뒤에 간 중국이고, 특별한 공적인 업무가 없어 자유로운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열하일기가 탄생하게 되었다. 연행은 대략 5개월 동안 진행되는 행사이다. 800km에 다르는 대장정은 엄청난 모험의 연속해 도착했지만 건륭황제는 그 장소에 없었다. 건륭황제가 열하까지 부르자 일정을 당겨 서두르게 된다. 피곤했지만 열하를 유람하자는 의지로 에너지틱함을 보여준다.
11주차  연암은 일상에서 생긴 에피소드, 즉 보통 사람들과 생긴 일화를 많이 적으면서 풍자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기술 문물, 선진 문물들을 보여주고, 세계에 대한 지식을 넓혀갔다. 연암 특유의 모습, 즉 자신을 알기 위해 타자와 교류하는 연암을 보여준다. 그래서 중국을 여행하면서도 허생호질과 같은 조선 양반 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을 만들게 된다. 타고난 연암의 글쓰기 능력이 중국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난다. 침창업의 연행일기나 홍대용의 연기와 같은 연대기적 작품, 주제별 작품은 효과적으로 전달하지만, 자칫하면 지루해질 수 있다. 연암은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하여 일지와 견문록의 형태를 모두 취하고 있다. 두 형식의 장점만을 보여주는 전략적인 글쓰기를 사용하여 연암의 천재성을 보여주어 지금까지 본받을 점을 보여준다. 도강록은 15일간 압록강을 건너가며 성 짓는 법, 벽돌의 모습을 보여준다. 성경잡지는 5일간 심양에서 본 것을 작성했다. 일신수필은 말에서 탄 상태에서 본 모습으로 병참지에 관해 적혀 있다. 관내정사는 11일간의 여정으로 중국 고전의 백의숙제 이야기와 호질이 포함되어 있다. 막북행정록은 만리장성 북방 변방을 간 이야기이다. 열하까지 가기 위해 길을 나간 5일간의 여정이 적혀 있다. 태학유관록은 태학관에 묵으면서 6일간의 이야기이다. 환연도중록은 6일동안 북경으로 되돌아오면서의 이야기이다. 교통제도에 대해 적혀 있다. 경개록은 열하에서 만난 중국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황교문답은 라마교에 대한 문답으로 라마교의 승려인 판차라마를 만난 이야기이다. 세계의 정세, 종교에 대한 생각이 적혀 있다. 반선시말은 반선의 역사적인 내력과 청나라 고종이 취한 정책에 관한 이야기이다. 찰십륜포는 활불 즉 살아있는 부처라고 말하는 판첸에 관한 이야기이다. 라마교에 대한 조선 유일의 기록이다. 행재잡록은 열하에서의 이런저런 기록으로 청나라의 임금이 궁을 떠나 나들이하는 곳인 행재소를 간 기록이다. 심세편은 형세를 살피는 것을 보여준다. 망양록은 중국 학자와 토론한 중국의 음악이야기이다. 곡정필담은 과학, 역사, 시문, 철학에 대한 기록이다. 산장잡기는 열하의 산장에서 쓴 여러 편의 글들이다. 환희기는 요술놀이를 구경하고 쓴 글이다. 황도기략은 북경을 관광하면서 쓴 것으로 황성의 문물, 제도 약 38종이 기록되어있다. 옥갑야화는 여관 옥갑에서 지내면서 한 이야기로 허생전이 적혀있다. 양업기는 홍인사부터 이마두총까지 주요명소 20곳이 쪽지에 쓴 짧은 기록으로 남아있다. 동란섭필은 돈란재에서 쓴 글로 연사 인물, 가악에 대한 잡록이다. 금료소초는 의약과 의술에 대해 적혀 있다. 청을 무시하고 낮추어 보는 시각이 많았지만,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조선과 중국의 국경지역을 지나는 도강록 중에서 수레가 많은 것을 보고 국경지역조차 이런데 내부는 어떨까 더 궁금증이 커지며 기가 죽었다. 다시 마음을 고치고 혜한으로 세계를 두루 살펴보면 자연을 시기하거나 부러워하는 마음이 없을 것이다. 그냥 따라만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여행을 하면서 청나라에서 관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록한다. 이러한 다채로운 견문은 사람을 사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안은 똥 무더기와 부서진 기와가 장관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청나라에서 말이 수레를 끌기 때문에 말 똥이 많은데 그 똥을 모아 비료로 사용했고 깨진 기와를 통해 예술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변을 가꾸고 꾸밀 수 있는 여유를 본 것이다. 용수생은 단순히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면서도 정돈된 여유가 백성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일정에 맞추기 위해 하루에 9번 강을 건너는 일야구도하기였는데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명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눈에 보이는 것에 구애되지 않으면 차별하지 않는, 편견과 선입견이 없어진다. 인간이 마음을 내려놓으면 제한이 없는 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12주차  건륭황제가 티벳의 소법왕인 판첸 라마에 예를 표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사신단들은 조선은 순유억불 정책을 했기 때문에 라마교에 예를 표할 수 없었다. 청나라 황제의 명이기 때문에 거절할 수도 없었다. 연암은 이 상황을 지켜보며 유배를 가더라도 유람을 갈 것이라고 말하며 즐겁게 지켜봤다. 판첸 라마에게 긍정적인 말을 하지 않고, 예를 지키지 않으며 조선 사신단이 대놓고 불만을 표현하지만 4단 번역으로 제대로 된 전달이 되지 않아 큰 마찰은 없었다. 이러한 기록은 조선 전체에서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라마교에 대한 정보, 청 황제가 라마교를 대하는 방식을 기록하여 중국, 조선, 티벳의 정보가 나오는 매우 드문 정보였다. 연암이 중앙 정계를 진출하지 않은 주변인이 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자유로움이 있기 때문에 열하일기를 쓸 수 있다고 사람들이 말했다. 연암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자유로움을 느꼈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적을 수 있었다. 민생과 이용후생에 의미 있는 글을 남기기 위해 열하일기를 적은 것이다. 세상을 위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과 나라에게 이롭게 된다면 그 법이 어디에서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이라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존명 배척을 말했던 조선의 사대부를 생각하면 엄청난 파격임을 알 수 있다. 연암의 친구인 박제가는 중국에게 배우지 않으면 누구한테 배우냐 질문한다. 연암은 단순히 돈이 많고, 물질이 많아지는 것 자체가 아니라 백성 즉 인간의 생명과 윤리, 공적인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서 편리함을 주장한다. 예를 들면 허생전의 이야기에서 허생이 돈을 많이 벌었냐가 아니라 역관 변씨와 허생의 우정, 참다운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공공의 이익울 중요시한 것이다. 또한 오랑캐라고 무조건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 사람들에게도 결국 우리가 오랑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편견이나 선입견을 없애고 넓은 마음으로 서로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열하일기를 쓰지만 완성하기도 전에 다양한 일이 기록되었고, 문장이 재미있어서 유명해진다. 정계에 진출하지 않았던 자유인이었고, 외부인이었다는 특수성이 당대의 시대성을 비판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열하일기를 보려고 했었다. 정조도 열하일기를 읽어보고 정조준하게 된다. 정조는 연암의 글이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글재주는 인정받았다. 구어체로 적힌 열하일기는 문체반정의 계기가 되었다. 6개월간 중국 대장정을 기록한 열하일기는 3년 후 출간되었지만 금서가 되어 1900년이 되어 풀린다. 연암은 고단한 삶을 살다가 50살이 되어 지방의 군수로 자진해서 일했다. 평생 의리파인 연암은 부인이 죽은 후 17년간 홀아비로 살았다. 연암은 가정적이면서 인간적인 글을 많이 남겼는데 손자가 태어났을 때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라는 편지를 썼다. 손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세세하게 알려주지 않는 것에 불평을 하면서 쓴 편지이다. 직접 반찬까지 만들어서 보내는 정성을 보여준다.
질문1 박지원이 이렇게까지 청나라를 치켜주면 다른 관리들이 왕에게 부정적으로 보고하여 조선에서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박지원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있나요? 그저 정계에 없었다는 이유만으론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천변풍경
13주차  천변 풍경은 다양한 문학중에서 익숙한 문학일 것이다. 수능이나 학교에서 많이 보았던, 들었던 책 이지만 알고있는 것과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다. 박태원은 1930년대 대표 소설 작가 중 한명이다. 영화감독 봉준호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하다. 한국 전쟁 이후 월북하여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가로 평가받았다. 1980년에 해금되기 전 그의 작품은 읽을 수도 연구할 수도 없었다. 1988년 이후부터 연구되기 시작하면서 1930년대 한국의 사회,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받으며 한국의 대표 명작으로 뽑히게 된다. 박태원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20~30년대 문장의 동향을 이야기 해야 된다. 1920년대 문학은 카프라는 단체가 주도하였다. 카프는 조선 프롤레탈리아 예술가 동맹이라는 이름의 약칭이다. 이들은 사회주의 이념을 선전하거나, 사회주의 이상 국가를 건설하려는 인간에 대해 문학적으로 형상화 하였다. 1930년대 이후 일제가 탄압하기 시작했고, 이들 스스로도 회의를 겪게 되면서 1935년 카프는 해산한다. 1933년에 구인회가 조직되었다. 9명이 문인이 활동하는 구인회는 카프 문학에 대항하여 우리는 순수 문학이고 이념에 대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모더니즘 문학으로 정의 내릴 수 있다. 모더니즘은 즉 모던한 문학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전통사회에서 하지 못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념, 가치에 억매이는 것이 아니라 개별화된 그들의 일상, 내면의식, 문물들을 주요 소재로 다루게 된다. 이들이 추구하는 미적 감각은 인공적이고 도예적이다. 새로운 소재와 새로운 미적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이들은 다양한 문학적인 실험을 시도한다. 박태원은 이러한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라는 소설도 모더니즘 소설로 박태원 본인이 소설가 구보씨로 나온다. 구보씨는 주변의 생활,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지 않는 개별화된 근대인이라고 할 수 있다. 노년의 박태원은 너무나 다른 색체를 보여주며 봉건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고 민속의 자주성을 강조하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북한에선 극찬을 하며 리얼리즘 작가, 역사 소설 작가라고 부른다. 천변 풍경은 조광이라는 잡지에 1936년부터 연재가 되었는데 이것을 단행본으로 묶어 출판하였다. 1930년대 경성 공간과 세태를 사실감 있게 재현하면서 세태 소설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모더니즘에서 리얼리즘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각종 문학적인 실험을 그대로 이어 나가며 민중의 삶을 보다 더 사실감 있게, 밀착감 있게 보여준다. 일본이 대륙침탈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경성은 식민지 경제의 중심지로 성장을 하면서 급속도로 근대화가 진행되기 시작한다. 1931년 최초의 백화점이 건설되고, 농촌에서 경성을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고, 도시 빈민도 늘게 된다. 근대 자본주의가 성장함에 따라 새로운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담아내고 있는데 문학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천변풍경을 참조하고 있다. 창수도 가평에서 돈 벌이를 하려고 올라왔다. 기행문은 서울의 첫 풍경을 보여주며 1930년대 경성의 발전을 볼 수 있다. 모던 보이라고 칭하는 새로운 소비 주체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들은 서양식 코트를 입으며 서양 모자를 쓰고 서울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여주며 사실적인 서울의 모습을 보여준다. 1930년대 조선은 근대 자본주의가 일본에 의해 발전을 하면서도 민족에 대한 억압이 계속 진행되고 민중의 궁핍한 삶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한 삶 속에서 조선의 모습을 상세하게 담아내며, 청계천의 모습을 짐작하게 해준다. 천변은 남촌과 북촌의 경계에 있으면서 개발된 남촌과 개발되지 않은 북촌으로 인해 슬럼화가 진행되어 오염되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천변을 끼고 살아갔고, 이러한 이야기를 소설에 담아냈다.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민중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며, 삶에 안주하지 못하는 민중들의 불안한 내면도 반영하고 있다.
14주차  광교 부근에 사는 사람들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삶을 보여준다. 2월에 빨래하는 아낙네로 시작하여 입춘 2일 정도 앞둔 이발소 소년이 중산모가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장면을 보는 것으로 끝난다. 즉 천변의 1년 풍경을 나타내고 있다. 서로 연결되어 연속적으로 만드는 영화의 기법인 몽타주 기법 혹은 파노라마 구성으로 50개들의 짧은 이야기들을 연결하고 있다. 각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이 다르고 주변인들이 연결되어 한번 씩 주인공으로 나온다. 통일성 이나 응집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의 공간은 청계천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빨래터, 이발소 등 여러 장소로 연결되지 않은 도시적 특징을 보여주며 분할이 된다. 외도하는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고 친정으로 돌아가거나, 부자집에 결혼을 했지만 차별을 당해 불행한 삶을 사는 여자, 결혼을 하지만 신랑이 콜레라에 걸려 죽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와 살면서 핍박에 버티지 못하여 친정으로 도망갔지만 그 또한 다를 것이 없는 여자 등 여러 불행한 사람들이 나온다. 천변풍경에서 여자는 불행하고, 가난하고, 시댁의 핍박을 받는 사람으로 나온다. 박태원은 이들이 서로 연대를 하면서 불행을 이겨 나가는 모습을 주로 보여주고 있다. 이발소에서 일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소문들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재봉이와 시골에서 서울로 왔다가 서울아이로 변화하는 창수를 통해 도시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터득해 나가는 새로운 세대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남성인물들은 굉장히 부정적으로 그려져 무능함, 타락함, 위선적인 모습을 통해 상직적으로 정신적인 남성성과 부권을 상실한 남성인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큰 줄거리는 없지만 각각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얽혀서 이야기가 굴러간다. 고현학은 변동이 격심한 현대의 모습을 기록하고 조사하는 것이다. 박태원은 고현학을 반영하여 구보씨가 본 것을 세밀하게 적고 자신의 내면 세계를 잘 적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아이의 눈을 빌려 세세하게 기록하는 천변풍경이 대표적인 소설이다. 천변풍경의 시점을 카메라 아이라고 하여 세태 모습을 객관척으로 표현하여 리얼리티, 진정성을 획득했다.
15주차  천변 풍경은 민중의 눈으로 민중의 삶을 직접 관찰하는 독특한 서사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근대의 자본주의, 식민 체제의 부정적인 모습을 노출하고, 비판을 수행하는 소설이다. 만돌어멈이라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상경한 캐릭터는 굉장히 불행한 인물이다. 시골에서 상경해서 얼마 안되어 서울 사정도 몰라 빨래터에 돈을 내지 않아 봉변을 당한다.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면 돈을 받고 빨래터 주인도 이 수입에 대한 세금을 구청에 내고 있었다. 만돌 어멈과 창수와 같이 시골에서 갓 올라온 사람들의 눈을 빌려서 경성이라는 공간이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 냉혹하게 돌아가는 장소임을 보여준다. 악인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은 대체로 물질주의, 자본주의를 맹목적으로 쫓는 부정적으로 보여준다. 금광이 개발되면서 일확천금을 쫓는 사람을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도박, 밀수 등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행위를 그려 나가면서 자본주의가 왜곡되면 어떠한 사회적인 문제가 나타나는지 은근하게 보여주고 있다. 금순이 아버지와 동생을 통해 식민지 노동자들이 안주하지 못하고, 부산까지 가서 일본 가는 배를 보며 일본이라도 가고 싶다고 하는 모습을 통해 고통받는 노동자의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토지 조사 사업을 통해 집과 농토를 잃고 다리 밑에 사는 깍정이들 즉 노숙자나 부랑자들의 모습이나 일제에 위협이 되는 사람들을 수용소에 가두었다. 소설에서 깍정이를 기피해야 하는 사람들로 보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각 인물들이 어떻게 여름을 지내는지 보여주면서 깍정이가 보내는 여름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식민지의 노동자나 깍정이를 향한 천변풍경의 시선, 관심들은 극빈층을 양성하고, 인간을 대상화하고, 격리시키는 일제의 정책에 대해 암묵적으로 비판하는 시선이 함의 되어 있다. 부정적인 인물들은 대부분 일본 지향적 인물로 총독부 전매국 직공으로 일하는 이쁜이 남편, 하나꼬 남편, 민주사, 만돌 아범 등이 있다. 천변풍경은 자본주의와 식민 체제의 부정적인 모습, 잘 못 된 모습을 보여주며 비판하고 있다. 식민지 조선을 사랑하는 서민들의 삶을 따뜻하게 그려낸 소설이기도 하다. 서울 사투리도 생생하게 담겨 1930년대의 서울 말을 언어학자들이 관심있게 지켜봤다. 소설의 가장 큰 주제는 민중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민중의 삶, 애환에 보다 밀착된 소설로 풍속의 기록 속에 애정의 시선이 덧 씌워져 있다. 비극에서 탈출하는 서사가 중요하게 다뤄지며 해피 엔딩을 이루어 낸다. 기미꼬라는 인물은 소설 전체에서 가장 긍정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인기가 있는데 그 이유가 협기와 이웃에 대한 남다른 배려 때문이었다. 천변 풍경은 근대의 도시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 안에 믿음, 사랑, 정의라는 정통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민중의 생명력, 공동체 의식을 중요한 가치로 부각하면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보편적 휴머니즘에 기반하고 있다. 천변풍경의 한계는 보여주기에 급급하여 겉모습에 보여주기 불구하여 삶의 총체적인 인식에 도달하지 못한 것과 여러 기법을 사용함에 따라 서사적인 통합력이 약해졌고, 너무 우연이 반복되어 통속적인 측면이 강하다.
질문2 천변풍경은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우리의 삶도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우연이 반복되어 통속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