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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서양 고전 문학 강독 - 강의 요약문 1 픽션들, 변신

이게될까 2024. 4. 1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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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테이션
1주차 동서양 고전 문학이라는 과목은 세계 문학 작품 4권을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인 이해를 키우는 것이 이 과목의 목적이다. 그중에서도 고전 문학이라는 것은 오랜 기간 동안 또는 오랜 기간은 아니더라도 집약적으로 많은 독서가 이루어 지거나 토의가 이루어져 사상과 지혜에 있어 보편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그래서 우린 동서양의 고전을 읽으면서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폭을 넓힐 수 있다. 이 과목은 이해가 아니라 강독 즉 굉장히 오래된 수업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각자 책을 읽으면서 이 단락의 뜻을 고민해보면서 서로 대화하며 소통하는 과목이다. 문학은 이론 수업이 아닌 미술 작품을 보는 듯이 보면서 그 안에 내포한 의미를 공부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의미에는 ‘정답’이라는 것은 없고, 자기 방식대로 읽을 수 있다. 교수가 한 명의 독자로서 한 책을 읽는 모습을 보이고, 보편적으로 가능한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것을 보면서 우리의 방식을 찾아 나가야 한다.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의 즐거움’을 서술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문예학자이다. ‘텍스트의 즐거움’은 문예학에서 중요한 이론서로 책을 읽는다는 것 그중에서도 문학 텍스트를 읽는 지식 혹은 정보의 습득이나 작가가 써놓은 것을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읽으면서 즐거움을 찾아 나가는 행위이다. 즉 읽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책은 ‘보르헤스’의 ‘픽션들’이다. 허구, 픽션, 이야기 즉 책에 관한 책이다. 자기 자신이 책 표지에 담겨있다. 요즘 우리의 삶을 보면 우리가 인터넷을 이용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닌 인터넷 속에 살고 있다고 볼 만큼 정보의 호수, 인터넷 바다에서 살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삶에 정확히 맞는 답을 내주고 있다. 두 번째 책은 ‘카프카’의 ‘변신’이다. 어느 날 일어나보니 자신의 몸이 거대한 벌레의 몸으로 변신했다. 이 책은 21세기 우리에게 개인의 심리나 인간관계에 대해 우화로서 재밌게 풀어가고 있다. 세 번째 책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이다. 기존의 형식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내용을 풀어나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다. 청나라를 갔다 온 뒤 조선과 청나라를 비교하며 조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책이다. 내가 있는 곳과 낯선 곳을 어떻게 바라볼 지 알 수 있는 책이다. 마지막 책은 ‘박태원’의 ‘천변풍경’이다. 여기서의 천변은 서울의 청계천 변이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 그중에도 청계천 주변에서 사는 삶을 굉장히 생생하고, 모던하게 풀어낸 책이다.

 

픽션들
2주차  왜 픽션이 아니라 픽션일지 고민해봐야 한다. 허구는 상상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끝없이 여러 가지가 있다. 즉 삶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말하거나 그런 것들을 내포하는 것이다. 읽으면서 문학이란, 가능성이란, 상상력이란 무엇이냐고 계속 책은 묻는다. 읽으면서 그 안의 스토리에 맞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입체적으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서는 갈림길이 끊임없이 있다. 나가면서 끝없이 선택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갈림길은 상상 혹은 경우의 수 아니면 이것으로 이루어진 문학을 비유로 하고 있다. 인터넷도 hypertext 즉 텍스트를 뛰어넘는 텍스트의 구조를 띄고 있다. 어느 한 페이지를 클릭하면 또 다른 페이지가 나오고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이 책은 인터넷이 있을 때 나온 책이 아니라 책을 읽고 상상의 이야기를 이해 혹은 창작하는 방법을 탐구해서 쓴 책인데 지금 인터넷의 hypertext와 유사한 것이다. 이 책의 첫 문장부터 유머러스하게 시작한다. 또한 많은 곳에서 지식을 가져온 책 이므로 주석을 필요로 하지만 소설을 읽듯이 상상하면서 읽으면 된다. 각주 또한 hypertext와 비슷하다. 이 작품을 탐정소설이라고 작가는 말하지만 정통적인 탐정 소설이 아니라 탐정이 진실을 밝혀내는 것과 같아서 탐정 소설이라고 말한다. 모든 독서, 모든 문학작품은 상상을 읽는 것이기 때문에 탐정 소설, 환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각주는 최초의 독서자의 생각이며, 이 각주가 왜 생겨났는지 본문과 이해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가면서 읽으면 좋다. 허구의 인물인 삐에르 메나르를 만들어서 돈키호테를 만들었다고 하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지속적으로 비교를 한다. 소설에서 작가는 이 주인공이 무슨 행동을 할지 계속 선택해야 한다. 또한 독자가 어떻게 생각할지도 고민해야 하기 때문에 메나르의 돈키호테는 픽션들을 제대로 설명해 주고 있다. 한 개의 선택이 많은 것을 바꾸므로 삶도 삶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 원고를 작성할 때도 쓰고 또 쓰고, 계속해서 교정하면서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원고를 버리게 된다. 각주에서 작가가 봤던 것, 느꼈던 것을 말해주고 있다. 위 본문은 사건을 진행해주고 있고, 각주에서는 이미지 즉 사진을 첨부했다고 생각하면 쉽다. 플롯은 줄거리이다. 문학적 주인공은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면서 어렴풋이 예견할 수 있는 인물을 만들어야 하지만 너무 유령과 같거나 일반적이면 안 된다.  도서관은 픽션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재미있게 풀어준다. 물리적으로 모든 책이 도서관에 있을 순 없지만 하나의 책이 다른 책을 예견할 수 있고, 사람의 성장을 돕기 때문에 도서관에 모든 책이 있다고 말 한다. 책이란 것은 결국 도서관으로 비유되고, 픽션 자체도 도서관으로 비유된다. 굉장히 많은 삶, 허구, 상상을 포함한다고 하여 도서관에 비유된다. 요즘 문학은 아카이브로 되었다. VR 혹은 온라인 강의도 문학과 같이 실제와 허구가 섞여 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필름도서관이었던 암스테르담의 영화박물관은 필름의 사용이 줄자 폐지되었고 상상의 나래였던 영화를 보면서 지식을 쌓는다. 이 책을 세세한 줄거리를 외우면서 읽기보다는 책이 무엇을 하는지를 이해하면서 포스트 모던 문학의 스타일을 알아보면 좋다.
3주차 바벨의 도서관이 어떠한 방식으로 서술되었는지 이해해보고, 도서관이라는 곳 자체가 굉장히 독특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픽션이라는 것과 자료라는 것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면 된다.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작품은 책과 도서관과 독자와 자료에 관한 이야기이다. 도서관을 우주라고 부르는 문학적 위트도 살짝 섞여 있다. 바벨의 도서관은 능력이 다양했던 보로이스의 삶을 조금은 담고 있다. 책의 세계, 지식의 세계를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비유한다고 볼 때 우리에게 우주에 대한 하나의 시각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육각형은 큰 의미는 없지만 독특한 도서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진열실들 사이가 막혀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통풍 구멍들이 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다른 학문간의 소통이 꽉 막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용이하도록, 교류하도록 난간도 낮고 통풍도 된다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또한 위층과 아래층도 훤히 드러나 있다. 지식이 총체라는 것이 분야별로만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미래, 현재 모두가 영향을 끼친다고 도서관에 비유해서 말한다. 바벨의 도서관도 이상적인 지식의 공간으로 나온다. 거울은 보는 사람을 반사해서 보여준다. 거울을 통해 바벨의 도서관이 모습이 무한히 복사되어 보인다. 거울을 통한 이러한 복제는 왜 필요한가를 저자는 묻는다. 거울이 비유하는 것은 독자를 말하는 것 같다. 거대한 지식의 세계가 하나의 백과사전, 도서관이라고 말하면 백과사전에 거울을 붙여서 보면 현재의 내가 업데이트 되는 듯이 나의 반응이 올라가고 각주가 올라간다. 정보와 문학 즉 만져지지 않는 것을 가지고 문학, 정보, 지식을 표현한다. 사실관계만 생각하지 말고, 도서관이 영원으로부터 존재한다는 것은 인류의 생각과 지식을 도서관이 표현하고, 기록 또는 흔적도 도서관이 된다. 태고의 도서관 사서들은 언어와 다른 언어를 썼다는 것은 다른 도구를 사용하고 다른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도 나만의 도서관에 나만의 흔적을, 기록을 남기면서 사서이다. 책이라는 것은 하나의 매체의 일부다. 매체는 모든 지식, 내용을 담는 그릇과 같다. 영화, , 인터넷, 사진 모든 것이 매체이다. 픽션들도 책이라는 것 자체의 매체이다. 메체고고학이란 매체들을 탐구하면서 사용자들의 생각을 생각해보고 새로운 매체를 탐구하는 것이다. A라는 책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둘러싼 전체적인 관계속에서 어디에 있는가를 알기 위해 또 다른 책이 계속해서 필요하므로 모든 책이, 지식이 연결되어 있고, 다른 학문과의 연관 관계를 말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각주가 되어준다. 참고 문헌도 이것의 예가 된다. 아무리 도서관이 크더라도 모든 책이 다르기 때문에 한가지 책을 여러 명이 읽더라도 모든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4주차  동 서양 고전 강독을 온라인 수업으로 듣고 보는 것이 동 서양의 많은 책들이 꽂혀 있는 서재로 가는 오솔길에서 노니는 것과 같다. 우리가 한 명의 독자이자 지식의 세계에 있어 어린이로서 계속해서 수많은 길에서 길을 잃어도 좋고, 멋있는 책들이 있는 곳을 다니면서 즐겁게 책을 읽으면 된다. 백과사전은 ㄱ, , ㄷ 순으로 만들어질 당시의 모든 지식을 다 넣어 놨다. 이제는 쓸모가 없는 잃어버린 지식들이다. 요즘은 책으로 만들기 보다는 인터넷 속에 있다. 잃어버린 백과사전이라는 의미는 이것을 보고 알 수 있다. 독자라 새로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상실된다. 즉 기존의 것은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고 소통하는 생각들, 생각을 나타내는 상징이 질서 정연하게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미로를 상징하고 있다. 시간에 따라 지식이 새로워지고 버려지고, 사라지면서 보이지 않는 불가사의한 미로 속에 있다. 이것이 우리의 정신, 지식의 세계이다. 작 중 인물이 주변 사람들에게 두가지 말을 한다. ‘나는 은퇴해서 책을 쓰겠다’, ‘나는 은퇴해서 미로를 만들겠다사람들은 둘 다 만들 줄 알았으나 책은 미로이고 미로는 책이므로 책을 적겠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 에 따라 수많은 해석들이, 생각의 겹 가지 들이 뻗어 나온다. 이 말을 그대로 은퇴 하느냐 에 집중하지 말고 미로에 집중하면 된다. 수수께끼 문장이 적힌 편지를 돌려주었고 받은 사람은 이해를 하지 못하고 다시 돌려줬다고 한다. 픽션들이 하나의 편지라면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돌려주는 그림도 그려진다. 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잘 읽어보면 이 편지의 의미를 알아봐야 된다. 미래라는 것이 중요하게 그려진다. 책은 항상 과거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 책이 만들어지고 미래에 독자가 오는 것이다. 즉 독자를 미래로 보고 단 한가지가 아니라 끝없이 먼 미래들의 새로운 독자들을 끝없이 갈라지는 길들의 정원으로 보고 있다. 미래의 독자를 아들 혹은 딸로 비유하고 있다. 잃어버린 백과사전을 계속 보는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개선해 나가고, 새로운 장을 덧붙이면서 진정한 미래의 독자이다. 과거와는 다르게 오늘날 우리는 단 몇 초 만에 기록을 남길 수 있어 새로운 창작을 만들고, 텍스트를 읽는 행위 자체도 창작이 들어있다. 수용자로서 받아들일 때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와 같이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진정한 독자의 행위를 하고 있다. 독자의 반응을 기대하는 수용미학도 있다. 다양한 미래들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의 무한한 가능성, 갈림길을 말한다. 모든 작품 속에서 독자는 하나를 선택하는데 취팽의 소설 속 독자는 모든 것을 동시에 선택하면서 여러가지 갈림길, 하이퍼 텍스트를 만들어낸다.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어떠한 행위를 선택하면서 결과가 나오는 게임세계와 언어적인 도구를 사용한 픽션의 세계가 같다. 한 가지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보는 것이 취팽의 소설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계획된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가능성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보면 삶이 허구의 세계, 게임의 세계와 다를 것 없다고 본다. 인간 자체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텍스트였다. 취팽은 문장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행간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여백에서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의 여지를 볼 수 있다. 모든 책에 있는 빈칸은 픽션을 나타내는 뛰어난 단어이다. 책을 옮기면서도 단어에 대한 실수를 고민하고, 원고 순서에 대한 재정립, 전체를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면서 작품을 다시 만들었다.
질문1 새로운 것을 읽으면서 기존의 책이 상실한다는 부분이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새로운 지식으로 덮어 씌우면서 기존의 지식은 잘못된 것이 생기면 사라지는 것 인가요?

 

변신
5주차 카프카 문학에서는 억압과 꿈이 중요하다. 카프카를 이해하기 위해 카프카가 쓴 아버지께 드린 편지를 가져왔다. 책 자체 내용은 한통의 편지를 60장에 걸쳐 나타나 있고, 특이한 정신세계를 볼 수 있다. 카프카가 죽으면 자신이 쓴 모든 편지, 일기, 책과 같은 글을 태워 달라고 부탁했지만 친구인 막스브로트는 유언을 따르지 않고 검열을 하여 책을 출판했다. 문학작품 뿐만이 아니라 그의 정신세계가 투명하게 비추어진 사적인 편지도 포함되었다. 프란츠카프카 꿈은 짧은 텍스트의 모음집이다. 꿈이 중요한 이유가 실제 그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우화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한편의 꿈과 같은 세계를 이루고 있어 꿈과 현실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는 독특한 문화세계를 보여준다. 편지 내용에서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아들은 이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여 글로 표현하려고 시도하지만 불완전하다. 그 이유는 두려움 그 자체가 이 글을 적는 것을 괴롭히고, 소재의 거대함이 내 자체를 뛰어 넘었기 때문이다. 변신이라는 소설에 힌트를 주고 해설의 역할을 해주는 책이다. 꿈을 꾸는 것 자체가 두려움, 억압, 정신적으로 투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프로이트의 꿈 작업, 스스로 꿈을 꾸면서 정신 세계를 정리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과 같다. 약혼자인 펠리체 바우어에게 쓴 편지에도 꿈의 내용이 있다. 현실을 꿈과 같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학적으로 내 생은 단순하다고 한다. 카프카의 문학은 꿈과 같은 삶을 묘사한 것과 같다. 한 쪽에 억압이 있고 이것을 해소하는 반대편의 것이 꿈이다. 아버지와 문학으로 볼 수 있다. 꿈으로서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프로이트가 꿈을 분석했듯이 정신분석학 적으로 문학을 볼 수 있다. 카프카를 읽는 다는 것은 억압된 것이 해방되어 피어나는 것을 보면 된다. 아름다운 것이 아닌 그로테스크한 꿈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문학을 읽는 것이고, 여러 작품을 꿈의 변주로 볼 수 있다. 변신은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그로테스크한 꿈이다. 하나의 카프카 적인 세계를 열어주는 오프닝에 해당하는 문장이다. 꿈에서 깬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첫 문장을 읽으면서 독자는 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꿈을 깼을 때를 읽으면서 독자는 오히려 책안으로 들어간다. 아버지는 규범과 억압을 상징하고 꿈은 문학과 예술을 뜻하며 대립된다. 꿈으로서 문학을 잘 읽어야 된다. 꿈을 꾸면 그 안에는 이상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특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데 그러한 꿈을 이해하기 위해 하는 작업이 정신분석이다. 이 것을 통해 꿈을 분석하면서 정신을 분석하는데 소설에도 이 것을 적용하여 카프카의 책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사건을 꿈에 나오는 사건이라고 생각하며 분석하면 된다. 나아가서 이러한 것을 왜 하나면, 우리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꿈이라는 것은 살아가면서 얻은 감정, 모든 일이 피어나는 것이 꿈이기 때문이다. 삶과 예술의 관계를 잘 이해하면서 꿈과 예술의 관계를 믿으며 정신적으로 더 잘 살아갈 수 있다.
6주차  확 뒤집어져서 변한다라는 독일 제목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변신의 뜻은 몸이 변한다이지만 독일어 뜻은 사태가 변한다 혹은 무엇인가가 확 전환되어 뒤집혀 바뀌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가까이 읽기라는 것은 문학비평에서 소설을 하나하나 면밀, 세심하게 분석하면서 읽는 방법이다. 이것으로 시작되어 문화 현상을 읽을 수도 있고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다. 옛날에는 강독이라는 수업이 같이 책을 한 줄 한 줄 읽으면서 한 문장을 가지고도 한시간을 이야기할 수 있다.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떻게 이 문장을 해석했는지 발표하고, 비교하기도 한다. 학생들과 교수의 풍부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옛날 강독 수업이 가까이 읽기 방법을 실천한 것이다. 문학의 개념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는 것이다. 변신은 소설 책 유형 중에서 장편도 단편도 아닌 중편소설이다. 즉 독일에선 노벨레로 분리가 된다. 독특한 중간 지대의 깊이, 길이 그리고 개입을 보여준다. 특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어느 날 아침은 우리가 맞이하는 모든 아침이 될 수 있다. 즉 독자의 모든 아침과 만날 수 있다. 즉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원문에서는 불안한 꿈들이다. 즉 꿈자리가 뒤숭숭했던 것이다. ‘꿈에서 깨어났다라고 표현하지만 자연스러움과 동시에 오묘한 함정과도 같은 표현이다. 이 책이 시작하자마자 카프카의 문학세계가 열리면서 꿈에서 깨는 것이 아니라 마법이나 최면을 거는 것처럼 카프카의 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꿈을 진짜로 느끼는 것처럼 문학, 소설도 진짜인 것처럼 느끼는 걸 잘 나타내 준다. 벌레도 될 수 있고, 동물도 될 수 있는 단어지만 가장 끔찍한 이미지가 벌레이기 때문에 벌레로 상상하고 벌레로 그림을 그린다. 괴 생명체와 같은 느낌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생각하며 독특하게 꿈은 아니라고 확인하고 말한다. 아름다운 꿈이 아니라 어둡고, 변신 자체가 하나의 불안한 꿈이다. 카프카는 19세기에 태어나서 100년전에 죽은 사람이지만,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내용이 지금 읽어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현대적인 사람이다. 카프카에게 문학 창작은 꿈을 꾸는 것과 같이 딱딱한 직장에서 보내는 낮의 생활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잠을 한 번 더 자서 어처구니없는 일을 잊어버릴까 했지만 잠도 오지 않아 자지 못하는 것을 보면 현실적이기도 하다. 원래 같았으면 바로 일을 하러 가야 하는 본인을 한탄하며 세상이 끝나기를 바란다. 굉장한 일이 벌어졌음에도 무슨 일이 있어도 출근을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출근을 준비하는 것을 보며 그로테스크한 리얼리즘을 볼 수 있다. 독특하고 기이한 이야기 속에 삶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다. 공감을 하면서 재미있게 읽으면 잘 읽는 것이다. 카프카를 정신 분석학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무거운 것만은 아니라 그로테스크한 것이 삶과 동떨어진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인 것이기 때문이다. 삶에 그로테스크한 것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꿈을 리얼리티하게 본다. 벌레의 몸에 익숙해지면서 귀가 좋아졌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이 카프카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세상의 모든 것에 지나치게 청력이 밝은 사람이라 볼 수 있고, 그것을 표현했을 때 인간은 알아듣기 힘든, 그러나 문학은 모든 이가 이해할 수 있다. 변신이라는 작품 자체가 또 하나의 아버지에게 쓴 편지라고 볼 수 있다. 아버지의 폭력이 소설에서 많이 나온다. 이것이 이세상 모든 아버지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 대표되는 규범적인 존재가 억압을 가하는 존재이므로 인문학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7주차  하나의 감정을 연구하고, 탐구하는 소설이다. 그 감정 중에도 혐오라는 감정을 생각할 수 있다. 외판사원으로서 살면서 겪은 힘든 일들, 억압된 감정들이 스스로에게서 벌레와 같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갑자기 벌레로 변해버리는 외화, 체화가 된 것이다. ‘~~이라고 부르며 혐오하고 비하하는 부정적인 언어의 패턴, 감정들이 한국 사회들에 유포가 되어있었는데 이 것과 유사한 감정들이 변신에 내포되어 있다. 보편적인 현대인들이 자기 자신, 혹은 남들을 혐오하는 기이한 감정, 문제적인 감정을 나타낸다. 여기에서 혐오는 남을 비하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자기 비하도 들어있다. 그레고르 또한 모든 현대인들을 대변해주는 문학적 존재이다. 괴 생명체로의 변신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살면서 겪는 부정적인 사항을 하나의 비유적인 상황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레고르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데 아버지는 아들의 시체를 치우면서 신에게 감사할 수 있겠다는 말을 한다. 이것은 강렬한 혐오의 표현이다. 이런 부분들이 인간의 추악함과 나약한 부분을 예리하게 파고들은 부분이고,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묻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고통스럽게 마주하는 사람들의 냉혹함, 무관심을 보여준다. 하나의 작품을 다른 매체로 옮겨 새롭게 만드는 것을 각색이라고 한다. 영국의 로얄 발레단에서 각색해서 만든 변신은 인간의 몸 자체로 해충으로 변한 그레고리를 표현하며 현대화된 변신의 이해를 보여준다. 자기 자신을, 남을 괴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한 변신은 주변 사람들의 냉혹한 비판, 시선을 담고 있다. 매머드머메이드 극단의변신하지 않음은 로얄 발레단처럼 몸을 일그러트리지 않고, 일상적인 모습, 몸을 보이면서 오히려 급진적인 각색을 보여준다. 우리가 겉모습이 변신하지 않더라도 그레고르의 변신과 같은 것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다. 벌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이러한 말을 하냐가 중요한 것이다. 영화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변신을 읽는 여자가 나온다. 이 여자는 다른 사람으로 변신을 한다. 우연히 이 여자의 골목에서 남자를 재회하는데 여자가 남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남자와 시간을 상실한 것을 알려준다. 하나의 시간의 구간이 삭제됨으로서 연애를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삭제시키고, 시간의 빈 공간 속에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픽션이 생겨난다. 그것이 변신이다. 어떤 사람과의 과거를 망각함으로서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변신이 이루어 진다. 상호 텍스트라는 것이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다.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작품이 현대의 다른 예술에서 활용되는 가를 알수 있다. 그레고르 잠자가 결국 아들로서 겪는 억압, 사회속에서 받는 억압을 마주하는 장면이변신의 이야기라고 하면해변의 카프카에서는 사춘기를 맞은 한 소년이 아버지와 살던 집을 벗어나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자 변신하여 새로운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며 변신을 볼 수 있다. 이 소년이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아버지의 서재에서 무엇인가를 훔쳐가는 것을 보며 윗 세대와 아래 세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변신과 해변의 카프카에서 상호 텍스트적인 관계를 볼 수 있다.
질문2 작가는 세상의 모든 것에 지나치게 청력이 밝은 사람이라 볼 수 있고, 그것을 표현했을 때 인간은 알아듣기 힘든, 그러나 문학은 모든 이가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설명해주신 부분이 있는데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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