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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한국의 영토 13주차 - 한국과 일본, 독도 관계

이게될까 2024. 12. 1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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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시 - 사실상 한국의 독도 지배를 허용한 일본 

1 - 교환 공문이 말하는 내용

1)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교환 공문

1965년 6월 22일 - '양국 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교환 공문' 합의
양국 정부는 별도 합의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양국 간의 분쟁은 먼저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하기로 하고 이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는 양국 정부의 합의하는 절차에 따라 조정에 의해 해결을 도모하기로 한다.

 

2) 교환 공문의 특징

1. 국제 사법 재판소나 중재 위원회에 의한 해결이라는 문장이 들어가지 않았음

2. 독도 명칭이 본문에서 삭제되어 독도 문제가 아니라 한일 간의 일반적인 분쟁 해결 방안이 됨

3. 해결 방법을 '외교상의 경로' 및 '조정'으로 했음

4. 조정의 대상은 양국 간의 분쟁 이므로 독도가 분쟁지역이 아니라면 한일 간의 논의 대상이 될 수 없음

 

2 -  일본 내의 반응

독도 문제가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전망

일본 측이 말하는 독도 문제 해결 = 독도가 일본 영토가 되는 일 

 

1) 요미우리 신문 (1965.6.27)

독도의 귀속에 대한 요미우리 신문 기사 - 독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해결을 막는 명분 싸움 

외무성 - 독도 문제를 현재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해도 한일 정상화라는 사실에 양국 간 진정한 유화(=우호관계)가 생긴다면 해결될 수 있다는 점에 기대 

=> 외무성의 답변은 "일본 정부가 독도를 일본 영토로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음을 고백한 내용 

 

2) 요미우리 신문 칼럼(1965.10.12)

독도는 어디로
- 너무나 먼 교섭 개시
- '일본 귀속'에 비관 설도

일본 외무성이 독도 문제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정리한 내용

국내 의견 - 실질적으로 독도가 반 영구적 보류가 된 것과 마찬가지 => 일본 영토가 된다고 기대 X

외무성 - 한국 측 태도로 보아 문제 해결하기 어렵다.
국교가 정상화 되면 신뢰가 쌓이고 국민 감정이 변화되어 나중에 해결할 수 있다.

 

3) 아사히 신문 (1965.10.28)

마쓰모토 의원 - 독도가 '분쟁'사항 중 포함된다고 하지만 한국 측은 한국 영토임으로 일본 정부가 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사기다.

 

3 -  한일 양국의 독도 문제에 대한 입장 

한국 정부
- 1965년 한일 협정 때 교환 공문에 독도 들어가지 않음
- 독도는 한일 간 협상 대상이 아님
- 독도는 사법 대상도, 조정, 중재의 대상도 아니다.
- 독도는 한국 고유 영토로 분쟁 지역이 아니다

일본 정부
- 국제 사법 재판소든, 조정이든, 대화할 요으이가 있다
- 독도는 명백한 분쟁 지역이다.

=> 분쟁이다. 분쟁이 아니다. 라는 주장으로 이어짐 

1965 - 당시 상황으로 독도는 12해리까지만 영해로 주장할 수 있는 작은 섬으로 경제적 가치 X

1977 - 독도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사실상 한국의 실효 지배를 허용함 

 

2차시 - 일본 측 현대사

1 - 2차 대전 후 점령기의 일본

1) 연합국, 일본 점령 개시

1945.08.28 - 미국, 영국, 호주 등이 일본 점령 개시

1945.09.02
- 일본 무조건 항복 문서 조인
- 일본 주둔 최대 세력 = 미국.  그 다음은 영국 연방국(영국, 호주, 뉴질랜드)
- 소련, 중국, 네덜란드 등은 주재무관만 파견

 

2) 일본 분할 통치안

독일 분할통치한 것 처럼 2차 대전 중에는 일본 분할 통치안이 존재 

분할 통치안 폐안 후 '연합국군 최고 사령부(GHQ)'에 의해 1952년까지 통일된 점령 통치가 시행

 

3) 일본의 민주화

1945.10 - 맥아더가 일본 신 내각에 '5대 개혁 지령'을 내림(민주화 정책)
1. 여성 해방
2. 노동자 단결권 주장
3. 교육의 민주화
4. 비밀 경찰 폐지
5. 경제 민주화 

1945.12
- 신도지령 -> 국가 신도 폐지
- 신교의 자유, 국군주의 배제, 정교분리 등이 목적
- '대동아전쟁'등의 용어 사용 금지

1946.01.01 - 천황 히로히토 '인간 선언'

1946 ~ 1952
- 재벌 해체
- 4대 재벌(침량 전쟁의 기반이 된 재벌) 해체 -> 경제 민주화

1947 - 농지 개혁(반공 정책)

1947.03 -(구)교육 기본법 시행 : 교육의 민주화

1947.05
- '일본국 헌법' 제정
- 제9조: 전쟁 포기와 군대 보유 포기 명기
- '대 일본 제국'으로부터 '일본국'으로 국호 변경

1946.05~ 1948.11 - 국제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으로 A급 전법 23명 확정

 

4) 한국 전쟁 발발

1948.08 -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48.09 - 북한 정부 수립 선언

1949.09 - 주오하 인민 공화국 성립

1950.06 - 한국 전쟁 발발 

GHQ
- 반공 정책 강화로 정책 전환
- 민주화에 역행
- 한국 전쟁 특수로 일본이 경제적으로 부흥
- 일본의 치안 유지 목적으로 있던 미군 75,000명 한반도로 급파
-> 맥아더는 경찰 예비대 창설을 일본 정부에 명령

한국 방공식별구역 (KADIZ)
- 한국 전쟁 기간 중 1951 미국 공군이 KADIZ를 설정 = 독도 상공이 포함 
- 연합국이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한 증거 

 

5) 미일안보조약 체결과 한미 동맹 구축

1952.04
-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 발효
- 일본 독립
- 미일 안보조약 체결

1953.07 - 한일 전쟁 휴전 협정

1953.10 - 한미 동맹 조인(1954.11 발효)

한미 동맹 조인 이후 미국은 독도를 일본 영토라 하지 않음 

미국 지명 위원회 독도의 주권 국가를 '한국'이라고 표기 

 

2 -  1960년 대의 한국과 일본 

1960.04 -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 붕괴

1960.06
- 미일 신 안보조약 성립
- 자민당 정권, 국회에서 미일안보조약을 강행채결처리 
- 이에 일본 시민들이 분노
- 약 30만 명의 시위대가 국회를 둘러싼 안보 투쟁이 벌어짐 
- 기시 내각은 책임을 지고 총 사퇴 
- 이케다 내각 성립 
- '소득배증계획' 발표
- 일본인의 개인 소득을 10년간 2배로 하겠다는 계획
- '정치의 계절'에서 '경제의 계절'로

1961.05
- 한국, 군사 쿠데타로 박정희 정권 성립
- 미국, 쿠데타에 즉각 지지 성명 (냉전을 반영)

1964.10 - 동양 최초로 도쿄 올림픽 개최

1965.06 - 한일 국교 정상화 

 

3차시 - 새로운 한일 독도 갈등 

1 - 신 해양법과 한일 신 어업협정

1) 배타적 경제 수역

1970년대 어업 문제의 세계적 추세가 바뀌기 시작

당시 세계 각국이 나름대로 배타적 경제 수역 200해리를 선언하면서 자국의 국내법으로 200해리 법을 잇따라 제정하기 시작

 

2) 일본 12년 만의 독도 영유 선언

일본은 1977년 국내법으로 200해리법을 제정
후쿠다 다케오 수상 -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 점거 

일본 수상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주장한 일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12년 만에 처음
- 그러나 일본이 독도에 200해리 법을 적용시키진 않음 

 

3) 신 해양법 제정

1994년 UN 총회
- 배타적 경제 수역 200해리를 골자로 하는 '신 해양법'을 제정

일본
- 배타적 경제 수역의 기점을 독도로 내세우기 위해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계획적으로 되풀이

 

4) 김영삼 정권 독도 접안 시설 건설

1995
- 김영삼-하시모토 한일 정상 회담
- 김영삼 대통령이 하시모토 일본 수상에게 독도 영유권 주장

1997.11
- 500t급 선박이 접안 가능한 시설로 독도 접안 시설이 완공
- 1996년부터 시작된 독도 접안 시설 공사로 일본이 한국에 항의 시작 

1998.01 - 일본이 1965.06에 맺은 '한일 어업 협정'을 일방적 파기

1999.01 
- 한일 간 '신 한일 어업협정'이 체결
- 이 때 독도 주변 수변이 양국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중간 수역, 즉 공동 관리 수역으로 설정

한국이 '한일 중간 수역'으로 부르는 수역은 정식으로는 '한일 공동 관리 수역'이라 부름

 

2 -  '신 어업협정' 체결 과정의 문제점

1) 한국 측 제안을 거부한 일본

한국 
- 독도가 한국 영토임이 틀림 없음
- 독도를 기점으로 내세울 수 없는 바위섬으로 간주해 배타적 경제수역의 기점은 울릉도와 오키섬으로 하자고 제안 

일본 
- 독도를 일본 영토로 주장, 일본 측 200해리의 기점으로 삼아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선을 긋자고 한국 측에 요구 

신 해양법
-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바위섬을 배타적 경제 수역의 기점으로 삼을 수 없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독도 주변은 중간 수역(공동 관리 수역)이 되었음
한국 - 독도는 식수가 거의 나오지 않아 사람의 거주가 어려운 바위섬
일본 - 한국 측 제안 검토 BUT 거부

 

2) 신 어업협정은 영토 문제와 무관

중간수역의 설정으로 한국의 독도 영유권에 금이 갔다는 의견 
- 원래 '어업 협정'은 어장의 구역만을 정하는 것이어서 영토 조약이 아님

한일 양국 어느 쪽인가가 다시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있음

그런 면에서 어업 협정은 어디까지나 어업에 관한 협정일 뿐
일본 - '신 어업협정'으로 독도가 일본 영토가 되었다는 주장하지 X

 

3 -  시마네 현 의회, '다케시마의 날' 제정

2005.03 시마네현
- 1905.02.22 '시마네현 고시 40호'를 통해 독도를 시마네현 오키섬 관할하에 편입시킨지 100년이라며 현 의회에서 법안을 통과시켜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을 지정

 

2) 한국의 반발

한국 전체가 반발하면서 독도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

한국 정부는 독도 수호를 강화

독도를 관할하는 경북과 시마네현의 자매 관계를 해소, 교류를 중단 

 

4 -  되풀이되는 일본의 독도 도발

1) 고이즈미 정권, 독도에 순시정 파견 계획

한국 - 노무현 정권은 경비적 16척을 독도 12해리에 배치

일본 - 2006년 4월 고이즈미 정권은 독도 영해 12해리 안에 일본 순시정을 보내겠다 일방적 통보 

 

한국 - 물리적 충돌 위기

일본
- 아베 신조관방장관(당시)이 지휘관
-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순시정 2철 오키섬 대기

결국 양국이 회교차관 회담으로 문제 해결

일본 순시정은 기상 악화를 이유로 본토로 귀항

 

2) 1차 아베 정권의 교육 기본법 개정

2006년 9월 
- 1차 아베 정권 성립, 기본 교육법 개정
 교육 이념에 애국심 + 향토애 강조
 일본의 모든 교과서가 애국심을 벗어나서 기술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교과서 집필 자유 제한 
- 이후 '다케시마(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교과서가 다수 등장 

 

5 -  2008년 이후 한일 간 독도 문제 심각화

2008년 7월 일본 -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 신 학습 지도 요령 해설서>에 다음과 같이 기재, 독도 문제 심각화 
독도 영육권에 있어 한일 간 이견이 있다.

2008년 8월 한국 - '조용한 외교'로부터 '차분하고 단호한 외교'로 한국 정부 독도 방향 변경

2008년 8월 이후 일본 - 초중고 사회과 교과서, 외교 청서, 방위 백서 등 일본의 독도 영유권 강조 기재

2012년 8월 한국 - 이명박 대통령, 한국 대통령 최초로 독도 방문 

2012.08 일본이 독도 문제를 국제 사법 재판소로 회부하자 한국에 제의 -> 한국 거부 -> 일본의 단독 제소도 불사하겠다고 응수
" 독도 문제를 외교적으로 관리 하는 것이 중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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